대답하지 않는 유천을 놓아버리고, 아무 방향으로나 걸어버렸다. 유천이
따라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정신없이 걸어버렸다. 옳은 길이 아니야, 난 네
옆에 있으면 안 돼.
혹시라도 발소리가 뒤를 쫓을까봐 좁은 길을 찾아서 뛰었다. 어디로 가든
집엔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지금 당장은 저 놈에게서 도망치는 거라고 생
각하면서 좁은 길만 찾아서 정신없이 튀었다. 나를 온통 혼들어버릴 놈일
줄 알았다면 진구 하자고 내미는 손 따위 잡지 않았을 거다. 이제 마음올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내려진 모든 시간을 부정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