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이 나쁜 놈인지, 내가 모자란 건지 정리가 안 돼.”
그냥 둘이 함께 할 만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을 뿐이었던 게 아닐까.
그 사람이 정말 나쁜 놈이었던 것도 아니고. 연진이 아주 모자란 사람인
것도 아니고. 그냥 함께 할 만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을 뿐 아니었을까.
등올 토닥였지만, 그 말은 해주지 못했다. 아직 누군가를 제대로 위로할 수
있을 만큼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일 뿐이
었다. 할 수 있는 것 없이, 하는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의문올 가지고 가
만히 있기만 했다.
사실은 나도 묻고 싶다. 유천이 미진 걸까. 내가 비겁한 걸까.

연습실 불을 완전히 고고 문을 닫을 때연 살짝 어깨가 떨릴 때가 있었다.
어두워진 계단을 발고 올라가서 우리 열정이의 열쇠를 풀고 달려갈 생각에
열중해야 할 것 같은. 계단을 을라갈수록 빛이 많아졌다. 어깨가 떨리던 것
은 멈췄고, 고개를 들면 유천이 서 있었다. 일주일 쯤 지나고 보니 당연하
게 느껴졌다. 내가 열정이를 타고 갈 때까지 나를 보고 서 있었고, 조심해
서 가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오늘도 그렇게 잘 가라는 인사를 받고 나면,
어느 새 집에 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뒤
에 앉은 유천의 발이 끌려서, 조금 더 나가지 못하고 엄췄다.
“못난 남자는 화가 나면 키스가 하고 싶어.”
“내려.”
“못난 남자는, 아니 못난 박유천은 화가 나면 키스가 하고 싶어.”
절대 못나지 않은 남자가 자기를 못났다고 말하는 걸 듣는다.
절대로 못날 수 없는 남자가.
“황연진인가 뭔가 하는 애.”
실연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없는 연진은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도, 초코
아이스크림 한 통을 다 비웠다. 울 것 같은 표정을 짓지는 않았지만. 분명
당분이 호르몬을 이상하게 조종하는 것 같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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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이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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